3부의 권력이 법을 가지고 논다

관리자 | 2013.01.23 14:40 | 조회 7063
김영춘 소장님도 사법부의 이해할 수 없는 판결과 관련

소감을 밝히셨듯이, 이명박 정권 이후 지각 있는 한국인이라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현상들에 대하여

가치관의 혼란과 더불어 자괴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대한민국의 권력 3부는 법을 가지고 논다.”

떳떳치 못한 전과자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국민의 선택이니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그 대통령이 임명한 수장들의 다수가 범법자로 구성된 행정부와

위법적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입법부, 그리고 이들의 위법과는 별개로

위법의 결과물을 인정하여 법의 권위를 실추시킨 사법부….

이것이 권력 3부의 현실이고 보면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아직 법치국가에

한참 못 미치는 상태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권력이 법 위에 군림하고 국가 질서의 요체로서 법이 바로 설 수 없다면

법이란, 권력이 국민을 통치하는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이지요..

요 며칠 촘스키의 책을 읽고 있는데, ‘권력이란 이해관계의 산물’이며

‘민주화 이전의 국가에서는 무력을 통해 권력이 이익을 관철하고,

민주화된 국가에서는 여론의 조작과 통제를 통해 관철한다’는 촘스키의 말에 수긍이 갑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실상을 촘스키의 이 말에 비추어 보면

시사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모택동은 ‘권력이 총구로부터 나온다’고 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도 권력이 총구로부터 나왔던 때가 있었습니다.

근대 이전의 국가에서는 권력의 토대가 무력이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권력이라는 것은 언제나 정치권력을 의미했었습니다.

그런데 민주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보편적 가치가 되고 있는 국가에서

무력이 더 이상 권력의 토대가 될 수는 없습니다.

또한 권력의 의미도 정치권력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정치권력의 배후에 좀 더 광의의 권력이 있다는 것이지요.

근대화와 민주화의 과정에서 이 권력의 성격이 규정될 것인 바,

다수 국민으로부터 나온 권력이 아니라면 그 국가는 아직

성숙한 민주국가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의 대한민국은 아직 성숙한 민주국가라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80년대 이후 민주주의의 진전이 있었고, 이미 60여 년 전에 성안된 헌법에는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했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권력이 법을 무력화시키는 현실을 이해하기 힘들지 않겠습니까..?

최근 권력자들이 행사하고 있는 불미스런 일들은

이미 무력으로 권력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힘든 현실이기에,

여론의 통제를 위한 하부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필연적 현상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한 앞으로도 현재의 권력층은 스스로의 실체를 드러내는 자충수를 반복할 것이라 예상됩니다.

그렇게 예상하는 연유는 대한민국의 권력층이

민주주의와 함께 성장한 보수 세력이 아닐뿐더러, 국민의 눈 높이를 얕잡아보고 있으며,

이들에게는 미래를 바로 세울 수 있는 ‘가치’ 즉 국가철학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점이 대한민국 권력층의 ‘아킬레스 건’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서구 여러 나라의 보수 세력은 한 때 민주주의를 추동해 낸 주체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구의 보수 세력은 스스로 법과 도덕의 수호자임을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고,

역사에 있어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현재의 권력층이 걸어 온 과거 100여년의 이력을 들여다보면

소위 保守를 할 만한 가치를 찾을 수 없습니다.

오로지 자신들의 기득권 확보와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정의롭지 못한 야합의 이력만이 보일 뿐입니다.

조선의 지배세력이었던 노론의 후예들이 나라를 팔았고,

친일과 부역을 통해 확보한 물적 기반을 유지했으며

해방 후에는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분단의 한 축을 자임했고,

정치군인들에게 굴종했으며, 독재와 결탁하여 자본을 축적하고

무분별한 중복 투자와 대책 없는 자본시장 개방으로 환란을 초래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 대해 일면적 평가라 항변할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면적 평가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의 평가를 한다 해도 그것이 保守할 만한 가치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을 수구세력이라 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수구세력은 여전히 국가의 미래나 국민의 행복 보다는

자신들의 이익 추구라는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권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이들은 무리수를 두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상식과 양심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대다수 국민들이 반대하는 30조 원짜리 4대강 사업과

세종 시 수정 계획을 밀어붙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모름지기 이 두 개의 정책이 현 정권의 무덤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억측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수구세력의 탐욕적 본성 때문에

대한민국은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 입니다.

이들은 스스로 변화 발전할 수 없는 세력입니다.

외부의 자극과 충격으로 부서졌을 때 시대의 변화를 수용할 줄 아는 세력일 뿐입니다.

짧은 우리의 현대사가 이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혼란스럽고 답답한 현재의 대한민국 현실 속에 빛이 스며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수 국민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는 지점이 진보가 시작되는 출발선일 수 있습니다.

권위주의 정치권력이라는 한 꺼풀을 벗기고 보니 좀 더 음험한 수구의 속살이 드러났습니다.

견고한 수구의 성을 허물기 위하여 집요하게 싸워야 할 시점에

민주주의자들은 현실에 안주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시간과 추세는 민주주의자들의 편이라 기대합니다.

다수 국민이 주인이 되는 국가, 다수 국민이 행복한 국가를 만들기 위한 계기를

최근의 비상식적 현상들로부터 찾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진보가 수구를 구축했을 때 정상적 보수도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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