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본추천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학문의 자유를 갈망하며 탈북한 천재 수학자 '리학성’은 자신의 신분과 사연을 숨긴 채 상위 1%의 영재들이 모인 자율형 사립고의 경비원으로 살아간다. 차갑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학생들의 기피 대상인 ‘리학성’은 어느 날 자신에게 수학을 가르쳐 달라는 자칭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 고등학생 ‘한지우’를 만난다. 좋은 성적과 정답만 요구하는 세상에서 방황하던 ‘한지우’에게 올바른 풀이 과정을 찾아 나가는 법을 가르치며 ‘리학성’ 역시 뜻하지 않은 삶의 전환점을 맞게 되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검은 손때 가득한 <수학의 정석>과 <개념원리> 문제집 그리고 제도샤프로 문제를 풀던 학창 시절의 수학은 나에게 가깝고도 먼 미지의 영역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 고등학생 3명 중 1명은 ‘수포자’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수학에 대한 학습 부담과 스트레스로 초등학교, 중학교 학생 중에도 수학을 포기하는 비율이 상당수를 차지한다고 하니 수학교육 방식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수학은 논리와 규칙성을 찾아가는 사회와 밀접한 학문이다. 그러나 현행 수학교육은 학습의 즐거움보다는 성적에만 치중하다 보니 학습에 대한 부담이 오히려 반감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포기가 아닌 용기를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탈북자와 수포자라는 독특한 소재의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상위 1%의 수재들만 모이는 자율형 사립고에 다니는 지우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지우는 중학생까지만 해도 영재 소리를 들었다.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으로 자사고에 입학했지만 가정 형편상 학원이나 과외는 꿈도 꾸지 못했다. 다른 학생들은 이미 1학년이 끝나기도 전에 고교 3년 교과과정을 모두 끝냈지만, 지우는 240명 중 238등을 할 정도로 버거운 학교생활을 해나갔다. 결국 담임은 일반고로 전학을 고민해 보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던 중 사건에 휘말려 기숙사에서 한 달간 퇴출당하는 징계를 받게 되고, 학교 내 폐쇄된 건물에 몰래 숨어 지내려다 순찰을 하던 경비원 학성에게 들킨다. 학성은 비에 젖은 지우의 모습이 안쓰러워 경비실에서 하룻밤을 재워주게 된다. 그 사이 지우의 가방 안에 있던 어려운 수학 과제를 전부 푼다. 이날 이후로 지우는 학성에게 수학을 가르쳐 달라고 조른다. 탈북자라고 학생들에게 ‘인민군’이라 불리던 리학성은 김일성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북한 최고의 수학자였다. 자신의 수학적 재능을 군사정보와 암호풀이 등으로 이용하려는 북한을 떠나왔지만, 남한 역시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가기 위한 개인의 성공 수단으로 수학을 이용해야 하는 현실에 회의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지금은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긴 설득 끝에 수학 공부를 가르쳐주기로 한 학성은 “첫째, 여기에서 무엇을 하는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둘째, 수학을 알려주는 것일 뿐, 성적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 셋째, 수학에 관한 질문 외에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지우에게 수학을 보여준다. 입시 수학이 아닌, 문제 하나를 푸는 데 엄청난 시간이 걸리고도 답은 틀렸지만, 풀이 과정은 옳던 그 심오한 세계를 말이다. 몸소 배우며 이해하면 사랑하게 된다는 수학의 아름다움은 그동안 지우에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신비로운 세계이다. 수학과는 담쌓고 살며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는 3.14의 유명한 원주율이 영화에서는 악보가 된다. 이 ‘파이(π)송’은 수학이 차가운 논리가 아닌 아름다운 감성으로 다가온다. 3.1415926535897로 한없이 이어지는 원주율을 피아노 건반으로 옮기면 ‘미도파도솔레레 라솔미솔도레시’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극 중의 배경인 동훈고는 전라북도 전주에 있는 실제 자사고인 성산고등학교라고 한다. 여기서 촬영한 이유는 앞서 얘기했던 우리가 학창 시절에 최소 한 번은 봤을 그 <수학의 정석>의 저자로 알려진 홍성대 선생이 설립한 학교라고 한다. 촬영지로는 최상의 선택이다. 이 영화는 수학으로 풀어내는 아름다운 성장 이야기이자 인생의 풀이과정을 보여준다. 그 속에서 사상이나 이념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에게 정답보다 답을 찾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고 머리 싸매고 있을 게 아니라 내일 다시 풀어보는 끈기와 용기를 알려준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이것저것이 절대적인 것처럼 나누고 차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정확하게 똑떨어지는 답의 수학조차도 경우에 따라서 옳지 않을 수도 있으니 세상에 반드시 이것이 옳다는 것은 없다. 그래서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당신이 틀렸다’가 아닌 ‘당신과 나는 다르다’라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수학이라는 소재를 친숙하게 그리면서 미완의 청춘들에게는 위로와 성인이 된 우리에게는 가치관과 기준에 맞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한다.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삶은 올바른 답을 증명해나가는 것이 아닐까. Q.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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