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본추천영화] 헤어질 결심
주연 : 박해일, 탕웨이
개봉 : 2022년 6월
산 정상에서 추락한 한 남자의 변사 사건. 담당 형사 해준(박해일)은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와 마주하게 된다. "산에 가서 안 오면 걱정했어요, 마침내 죽을까 봐." 남편의 죽음 앞에서 특별한 동요를 보이지 않는 서래. 경찰은 보통의 유가족과는 다른 서래를 용의선상에 올린다. 해준은 사건 당일의 알리바이 탐문과 신문, 잠복수사를 통해 서래를 알아가면서 그녀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는 것을 느낀다. 한편, 좀처럼 속을 짐작하기 어려운 서래는 상대가 자신을 의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해준을 대하는데…. 진심을 숨기는 용의자 용의자에게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는 형사 그들의 <헤어질 결심>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은 참으로 모호하다. 시작의 감정은 갑자기 휘몰아치는 파도처럼 밀려오는가 하면, 자신도 모르게 잉크가 물에 번지듯 서서히 다가오기도 한다. 사랑의 감정 또한 긴 세월 동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정의하려 애썼지만 아직도 정확히 그려지지 않는 감정이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2016년 <아가씨> 이후 6년 만에 나온 박찬욱 감독의 신작이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작품으로 제작단계부터 박찬욱의 멜로는 어떨지에 대한 기대를 모은 작품이다.
영화의 배경을 보면 주인공 해준의 근무지가 부산으로 설정된다. 실제로 부산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했고, 그걸 보는 부산사람은 왠지 모를 감격 또한 덤이다. 주인공 해준의 근무지로 나온 부산서부경찰서는 옛 한국은행 부산본부이며, 기름봉으로 나온 곳은 기장 도예촌 부지라고 한다. 살인 용의자에 대한 단서를 찾으며 쫓는 추격씬은 동구 초량동, 중구 영주동 일대로 등장한다. 야경이 아름다운 이곳을 안다면 산복도로와 길고 높은 계단을 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서래의 집은 서구 남부민동에 있는 대동송도멘션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대동화명대교, 파크하얏트 부산 등 부산 촬영지를 보는 재미도 있다.
기자 간담회에서 박찬욱 감독은 <헤어질 결심>의 틀은 고교 시절에 읽은 마이 셰발, 페르 발뢰의 범죄 추리소설 <마르틴 베크> 시리즈에서 만들었다고 밝혔다. 시리즈의 <연기처럼 사라진 남자>의 서문을 쓴 추리소설가 밸 맥더미드는 주인공을 이렇게 묘사한다. "베크는 일종의 이상주의자인데, 직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이상으로 여기는 세계와 현실에 존재하는 세계 사이 간극에 계속 대면하게 된다. 간극에 대한 인식이 삶을 물들여 그를 우울하게 만들고, 가끔은 자신이 조금이라도 상황을 낫게 할 수 있나 하는 숙명론적 체념을 품게 만든다." <헤어질 결심>에서 해준의 캐릭터가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영화의 사건은 경찰관이자 인간으로서의 이상 때문에 사건에 휩쓸리는 해준의 캐릭터가 빚은 필연이다. 사랑의 미묘한 순간을 우아하게 포착한 이 영화는 두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잉크가 번지듯 여운으로 물든다. 주인공의 사랑은 휘몰아치는 감정보다는 숨겨진 감정이다. 때문에 이 작품에서는 유독 은유적인 표현이나 상징으로 인물들의 상황이나 심리를 묘사한다. 가장 큰 상징을 가지는 색은 청록색이다. 푸른색으로도 보였다가 녹색으로도 보이는 청록색은 이미지의 혼재와 모호한 심리를 보여준다. 영화의 다양한 은유적 표현은 뒤돌아 곱씹을수록 따끔하게 전해지는 대사들로 N차 관람을 부추기는 요소이며, 각본집이 불티나게 팔리는 이유이다. 영화의 각본집은 출간되자마자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영화 속 차고 넘치는 은유와 메타포들은 최근 본 영화 중에서 기교와 완성도에서 완벽에 가까운 세팅이다.
영원히 해결할 수 없을 '미결 사건'의 인물들은 박찬욱 감독의 지독한 취향으로 아름답고 우아하게 그리고 애틋하게 다가온다. 백 마디의 ‘말씀’으로 전해 듣기보다 직접 느껴보길 바란다. 그러면 파도처럼 밀려온 결심을 확인할 수 있을 테니, 마침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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