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와 엘고어
4.27 재보궐 선거가 끝났다.
선거결과에 대한 분석과 향후 정치지형의 변화에 대해 많은 평론이 쏟아지고 있다. 내용이 무척 재미있다. 당분간 단기적인 각 정파의 이해득실과 관련된 주판 튕기기가 계속될 것이고, 후폭풍도 만만찮을 것 같다.
나는 이 기회에 우리나라 정치가 한층 품격있는 정치로 거듭나기 위해 한나라당과 손학규 대표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
1. 한나라당
선거패배가 있었으니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고, 그 결과로 지도부가 총사퇴했다고 한다. 언젠가 보았던 풍경이다. 지방선거 패배와 이어지는 재보궐 선거마다의 패배, 지도부의 잦은 교체, 대통령과 거리를 두기 위한 때리기와 탈당시키기…
지난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에서 보여줬던 행태를 한나라당이 되풀이하려는 모양이다. 경험했던 풍경, 아직도 잔상이 남아있는 그림이라 그런지 별로 긴장감도 없고 감동적이지도 않다.
한나라당에게 묻고 싶다. 대통령을 씹다 버리는 껌 같은 존재로 전락시킬 것인가?
그와 영광의 장면은 함께 하고 힘을 가졌을 때는 혼연일체가 되어 일사분란하게 행동하다가 단물 빠지면 뱉어 버리는 행동은 시정잡배들의 의리만도 못하다. 정치를 더 이상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한나라당이 그토록 성토했던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전철을 답습하지 않는 길에서 시작해야 한다.
MB가 잘못하는 것은 여당이 책임감을 가지고 바로잡되, 그의 영광스러운 퇴임을 준비해주는 것은 우리 정치의 품격을 향상시킬 수 있는 한나라당의 몫이다. 훗날 한나라당의 전당대회에서 퇴임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축사를 하는 장면을 진정 보고 싶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그런 장면 한 번 볼 때도 되지 않았는가? 민주당에서는 그 역할을 할 사람이 이제는 없다. 한나라당만의 자산이다. 당장의 유불리를 떠나서 정권과 권력을 함께 향유했던 선수들끼리 그 정도 예의는 지켜주는 것이 아름다운 모습일 것이다.
2. 민주당 손학규 대표
오랜만에 선거에서 완승했으니 당분간 축제 분위기를 즐기는 것이야 당연하겠다.
손학규 대표 정말 대단하다. 드러난 이력 이외에 그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는 않지만, 춘천에서 긴 칩거모습을 보면서 대한민국 현실 정치인에게는 찾아보기 어려운 무엇인가가 있음은 느꼈다.
사실 그는 더 쉽게 2009년 수원 장안 재선거에서 정치복귀를 할 수 있었지만 ‘긴 성찰’의 시간을 가진 정치인이다. 이번 재보선 승리를 통해 손학규 대표는 자기성찰의 세월을 통한 근지구력이 있음을 증명했다. 누구라고 언급하고 싶지는 않지만 경쟁관계에 있는 정치인들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진득함이 그에게 있다.
문제는 손학규 대표에게 집중된 힘을 어디에 쓸 것인가이다. 그의 지지자들은 절대 동의할 수 없겠지만, 나는 손학규 대표가 스스로 대권에 도전하지 말고 진보진영의 밀알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손학규 대표가 당대표가 된 전당대회 기간에 이인영 최고위원이 자처했던 세례요한의 역할을 이제는 손학규 대표가 실행할 때가 되었다. 손학규 대표가 그 역할을 자처하고 실행에 옮겨야만 현재 야당 대통령 후보 자리를 놓고 그와 격돌할 잠룡들이 일거에 ‘명예퇴직’을 할 수 있다. 손학규 대표는 이제 야권 대선주자로서 최대 지분을 소유한 인물이 되었다. 그 지분이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진입할 세대교체의 밑거름으로 사용되어야 201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이길 진보진영의 마지막 카드 한 장이 생긴다.
1969년 신민당 유진산은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온 후배들에게 ‘구상유취’라 일갈했지만, 훗날 김영삼과 김대중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다. 생물학적인 나이로만 빠지자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지난 미국 대선에서 전직 부통령이자 스스로 대통령이 될 뻔했던 48년 생 엘고어가 61년 생 오마바를 지지하는 모습을 보았다.
만약 손학규 대표가 갈등과 반목으로 점철된 동년배 정치인들을 동반 일선후퇴 시키고, 새 시대를 열어갈 지도자를 세워 그 후견역할을 자처한다면, 우리 정치사에 김구 선생에 버금가는 존경할만한 인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그런 역할을 한 정치지도자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손학규 대표, 그리고 현재 그와 경쟁하는 야권 잠룡들로는 대선승리가 요원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본인들이 더 잘 알 것이다. 47년 생 손학규 대표는 스스로 대통령이 되고자 이전투구 끝에 패배자로 기억될 것인가, 우리 정치가 그토록 열망하는 ‘존경할만한 지도자’가 될 것인가? 열쇠는 손학규 대표에게 있다.
그나마 없던 열쇠가 이번 기회에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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