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송우 이사장 취임사] 인본세상을 위하여

관리자 | 2019.07.26 14:19 | 조회 244





2019년 3월 
(사)인본사회연구소 신임 이사장

남송우/ 부경대학교 명예교수




 우리가 왜 <인본세상>을 내세우고 있는가? 이 질문은 어찌 보면 우문일 수도 있다.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인본세상과는 너무나 거리가 있어 자연스럽게 제기되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세상살이에서 사람이 늘 중심이라고 말들은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후기 자본주의가 심화되고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휩쓸고 지나간 지금, 최소한의 상식적인 삶을 뒤로 한 채 나만이 편하게 살면 된다는 생각이 우선시 되어가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나만 편하면 된다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자기애에 도취되어 있는 사람들로 가득찬 세상을 살고 있다. 돈이면 무엇이든 살 수 있는 세상에서 더 이상 인간은 중심일 수 없다.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고,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버려질 수 있는 것이 사람이 되어 버렸다. 돈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배금주의는 갈수록 강고해지고, 이제 모든 영역에서 돈이 왕노릇을 하고 있다그런데 이 돈은, 좌측에 명예를 앉히고 우측에 권력을 정좌시킴으로써 모두가 돈과 명예와 권력으로 조합된 삼두마차만을 뒤좇는 형국으로 세상을 조합해 버렸다. 이런 상황은 한국사회의 인본주의 정신을 급속도로 훼손시켜왔다. 일등만 살아남는 한국사회의 경쟁논리, 약자에 대한 갑질의 고착화, 인성교육의 부재로 인한 학교폭력의 일상화, 더 이상 추락할 수도 없는 인간 생명에 대한 경시 풍조 등은 우리 삶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모두가 행복을 느끼며 산다는 것은 이제 먼 나라의 이야기가 된 듯하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사회를 꿈꾸며, <인본세상>을 세상에 내어놓고자 한다. 그러므로 <인본세상>은 우선 이 시대에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어떤 삶인지를 꾸준히 모색해나가고자 한다. 이 모색은 바로 새로운 인문학의 개척과 인문학적 삶의 실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본다. 그래서 인문학의 영역을 전통적인 철학, 문학, 역사의 범주를 넘어,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의 영역을 가로질러 모든 영역을 통섭한 결과로 나타나는 인문학을 통해서 추구해 나가고자 한다. 이는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갈 인간을 상정해본다면, 어렵지 않게 이해되는 과제이다우리는 기계와 공존할 새로운 인문학을 개척해야 한다. 여기에는 인간 이해에 대한 다양한 방법론들이 동원되어야 하며, 각 영역에서 융합적 인문학이 발아되어야 한다. 즉 전통적인 철학적 관점에서의 인간 이해, 문학적 관점에서의 인간 이해, 역사적 관점에서의 인간 이해를 넘어서, 생물학적 관점에서의 인간이해, 경제학적 관점에서의 인간이해, 법의 관점에서의 인간이해, 심리학적 관점에서의 인간이해, 로봇과 교섭하는 인간이해 등 가능한 모든 영역으로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로 확장되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할 때만이 인간의 본질을 다양하게 해석하는 길로 나아갈 수 있다물론 이런 인간 이해만으로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인본사회가 온전히 펼쳐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주체로서의 인간은 또 다른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지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타자에 대한 온당한 인간 이해 없이는 우리가 바라는 사람다운 사람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사회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각기 생각이 다르고 궁극적 관심이 다른 자들이 갈등없이 서로 화평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역사 속에서 갈등과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온당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인본세상>은 인간 중심의 관계성에 대한 담론을 부단히 창출해내어야 한다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일차적으로 타자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소통의 길을 다양하게 마련해야 한다. 이는 서로 다른 생각들이 충돌하며 갈등하면서도 또 다른 차원으로 합의를 이루어나가는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따르는 공론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제대로 된 토론 문화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극복하기 위해서는 타자를 타자로 인정하고, 타자를 통해 나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나와 너의 온전한 인격이 만나는 성숙한 토론의 장을 일상적으로 창출해내야 한다. 일상 속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삶의 문제들을 자연스럽게 공론의 장으로 불러내어 각자의 입장과 생각들을 주고받을 수만 있다면, 타자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를 조금은 확보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사유의 일상화는 주체가 일방적으로 타자를 수단화하는 인간관계를 넘어설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열린 공론의 장을 일상화 하는 일이다. 특히 국경의 경계가 무너지고 다문화의 삶이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린 현실 속에서는, 지구촌에 공존하고 있는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나와 같은 인간이란 인식이 필수적이다. 이 일을 활성화 하는 촉매자로 <인본세상>이 나설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인본사회 연구소>를 중심으로 펼쳐질 다양한 공론의 장들은 이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바탕이 될 것이다한 인간에 대한 인본주의적 이해와 타자와의 열린 소통을 통한 인간관계의 온당한 형성만으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당장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일상 공간을 감싸고 있는 자연환경과 생태계, 나아가 인간이 구축한 다양한 문화공간들이 파괴되고 황폐화되면 인간의 삶은 반생명적인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생태환경과 안전이란 문제가 대두될 것이다. 제한된 자원 속에서 인간이 가진 욕망만을 부추기고, 이 욕망을 극대화하려는 사회구조는 생태환경의 끊임없는 파괴와 안전 불감증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삶의 일상적인 과제가 되어버린 미세먼지 재난부터 끊이지 않는 산업현장에서의 안전사고까지 인간의 삶을 비인간적으로 몰아가는 요소들을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서는 인간다운 삶의 환경을 조성하기 어렵다. 이 점에서 <인본세상>은 우리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사람다운 삶을 방해하는 환경적 요소와 일터의 조건들을 개선해 나가는 데도 필요한 목소리를 높여나가고자 한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이곳이 조금은 사람다운 삶의 조건들을 갖추어 나가는 삶의 터전으로 바뀌어 나가길 기대한다. 이 작업을 위해서도 <인본사회연구소>를 중심으로 다양한 담론의 창출과 현실적 대안들이 마련되고 제시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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