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문예지 ‘주변인과 문학’ 2014년 가을호 기고문] 세월호와 새로운 한국사회를 위한 정치적 상상

관리자 | 2014.10.01 14:22 | 조회 4369

[종합문예지 ‘주변인과 문학’ 2014년 가을호 기고문]


세월호와 새로운 한국사회를 위한 정치적 상상


(사)인본사회연구소 소장 김영춘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0여일이 지났다. 세월호 참사는 1997년 외한위기로 인한 경제위기보다 더 큰 충격과 분노를 안겨주고 있다. 사회위기이자 동시에 국가위기라 할 수 있다.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300여명이 넘는 어린 학생들과 국민들이 속절없이 수장되는 참혹한 현장을 TV로 지켜보면서 국민들은 정부라는 제도의 침몰과 팬티바람으로 도망가는 선장으로 상징되는 책임의식이란 윤리의 침몰을, 다시 말하면 이중적 침몰에 담긴 공동체의 위기를 목격했다. 세월호 참사는 그동안 우리 국민이 자부심으로 여겨왔던 산업화와 민주화의 동시달성이란 성과를 무색하게 만들었고 시민다수는 ‘국민 없는 국가’에서 ‘국가 없는 국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듯한 불안과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삼류국가 대한민국’. 왜 우리는 졸지에 삼류국가에 사는 삼류국민이 되어버렸는가 하는 자괴심과 탄식이 100여일 째 지속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모든 분야의 지식인과 전문가들이 그 원인과 분석 그리고 대안을 내놓고 있지만 그 모든 분석과 진단을 관통하는 개념은 바로 압축성장인 듯하다. 세계사에서 전무후무하다고 할 정도로 칭송되어온 압축성장의 기적은 그에 못지 않은 심각한 부작용을 낳아왔다는 것이다. 즉 군사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의 명령과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산업화가 이루어져 온 결과 도덕, 자율, 사회적 책임과 같은 개념이 소실되었으며 위험감수를 전제로 압축성장에 길들여져 온 시민의식과 빨리빨리, 대충대충의 관행이 일상화되었다. 또한 그 과정에서 형성된 영혼 없는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마피아적 관료체제의 무능력 등이 대다수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공통분모인 것 같다. 이 공통의 시각에 동의하면서도 필자는 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던진 질문들을 다시 정리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 곧 우리가 해야 할 실천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묻고 있는가? 김호기 교수 시각을 빌려 정리해 보자.

첫째는 가치의 문제다. 대한민국이란 사회는 무엇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있는가. 생명인가, 사랑인가, 이윤추구인가, 권력인가.

둘째는 정치다. 국가, 정부는 왜 존재하는가. 정부는 국민의 대리자인가 아니면 국민의 주인인가. 여당은 물론 야당을 포함한 정당의 존재이유는 무엇인가. 세월호 침몰이 청해진이란 해운회사와 유병언의 잘못이라면 단 한명도 구조하지 못한 구조참사는 해경을 비롯한 정부의 책임이 아닌가.

셋째는 언론이다. TV조선이나 채널A 같은 일부 황색 종편은 물론 지상파까지 언론이 존재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왜곡과 확인되지 않은 추측성 보도를 일삼으며 노골적으로 대통령과 여당의 책임을 물타기하는 한국사회의 소위 주류 언론들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가 아니면 장애물인가.

넷째는 교육이다. 기성세대는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 왔는가. 인간적 가치를 무시하고 학벌의 사다리만을 오르도록 강요하며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부추기지는 않았는가. 이런 교육시스템은 과연 언제까지 지속되어야 하는가.

다섯째는 산업화와 민주화로 요약되는 현대사다. 우리 현대사가 이루어 온 것은 무엇인가. 생명경시, 양극화, 각종 특권 마피아들이 저질러 온 부정부패와 정경유착, 기회와 능력만 된다면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국민다수의 생각이 산업화와 민주화의 또 다른 모습은 아닌가.

여섯째는 미래다. 침몰하는 세월호가 바로 대한민국의 미래는 아닌가. 우리 모두가 곧 실종자의 운명이 아닐런가. 우리의 미래는 과연 있기는 한 것인가. 있다면 어떤 미래여야 하는가.

마지막은 인간이다. 300명이 넘는 승객을 배안에 가두어 놓고 가만히 있으라는 익숙한 메시지를 반복하며 속옷 바람으로 도망친 선장과 선원들의 동물적 이기심에 우리는 경악했고, 자식과 가족을 잃고 아파하는 유족들에게 조롱과 멸시로 대응하는 반인간적, 반사회적 군상들에 분노했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의 본성은 선한 것인가 악한 것인가.

세월호가 우리에게 던진 이런 질문들에 응답하기 위해 한국사회는 깊은 집단적 성찰이 필요하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참사 이후 줄곧 그 특유의 유체이탈식 화법으로 아랫사람에게 책임 떠넘기기로 일관하다가 급락하는 자신의 지지율을 방어하고자 하는 지극히 정치공학적 차원의 사과와 눈물만 보였을 뿐이다. 해경 해체나 기존의 공무원 조직을 이리 저리 떼어 붙이는 식의 국가안전처 신설 같은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성급한 대안만 제시하고서는 내내 차가운 모습으로 돌아가 버렸다. 참사 이후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단행된 개각 인사는 해외토픽감의 코메디와 참사를 보여주며 원칙의 정치인이라는 이미지에 가려져 왔던 무능한 대통령의 실체를 드러낸 사건에 불과하다. 새누리당은 모든 ‘디테일의 악마’를 동원하며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및 피해 배상과 보상을 골자로 하는 세월호 특별법의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들은 교통사고 운운하며 참사의 원인을 유병언 일가에게 전가함으로써 자신의 책임은 모면하려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란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국민 모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새로운 재난대처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그 일차적 과제임은 자명하다. 사후 대처만이 아니라 사전예방을 위해 범정부적 차원의 재난 컨트롤 타워를 다시 만들어야 하고, 이 과정에서 해경을 해체하고 공무원조직 몇 개를 붙였다 뗐다하는 즉흥적 방식이 아니라 정부와 야당 및 시민사회간의 유기적 협력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또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속도와 효율을 중시하는 그간의 관행적 시민의식, 안전을 경제적 비용만으로 계산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삶의 기본조건으로 인식하는 시민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더 광의적으로는 ‘야만의 불량사회’, 3류사회로 전락한 한국사회가 새로운 가치를 지향하는 공동체로 변화해야 한다. 국민을 둘로 갈라놓는 ‘두 국민 정치’, 민영화-규제완화를 앞세워 기업의 탐욕만 채워주는 신자유주의 경제, 형식적 법치 또는 법치적 권위주의로 특징되는 낡은 국가-시민사회간의 관계, 만인 대 만인의 투쟁으로 점철된 이기적 개인주의 문화 등이 불량사회의 징표라면 그 반대 쪽 즉 사회구조를 통합하는 ‘한 국민 정치’, 시장방임주의에서 벗어나 시장에 대해 국가의 적절한 개입이 이루어지는 조정시장경제, 국가와 시민간의 경쟁적 협력을 강화하는 민주적 거버넌스, 개인과 집단이 생산적으로 결합하는 연대적 개인주의,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생명의 가치가 대한민국이 구축해 나가야 할 새로운 공동체의 모습이다.

세월호 참사는 관료중심의 국가운영이 이제는 더 이상 불가능함을 시사하고 있다. 국가적 재난이 발생했을 때 역대 정권들은 모두 다시는 인위적 재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하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사고는 꼬리를 물었다. 재난경제학은 재해도 제대로만 극복하면 약이 될 수 있다고 하지만 이는 자연재해에 국한되는 얘기일 뿐이다. 반복되는 인위적 재난은 경제자체에도 부담을 줄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공동체의 기반을 와해시킬 수도 있다. 21세기 자본론의 저자 토마 피케티는 세계경제의 장기침체와 불황의 근본적 이유는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신자유주의와 정글자본주의라고 지적한다. 이 적폐를 극복하는 일이 한 두 번의 정권교체로 이루어 질 수는 없다. 관료 중심의 국가운영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새로운 민주적 거버넌스가 강조되는 새로운 국가운영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를 극복하고 새로운 가치를 지향하는 새로운 공동체 대한민국을 구축하기 위해 필자는 ‘한국과의 10년 계약’을 제안한다. 그동안 한국사회의 진보적 발전을 모색해 왔던 다양한 세력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의 당위에는 쉽게 동의하면서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방법론에서는 작은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분열을 거듭해 왔다. 이는 월등한 물적 인적자원을 장악하고 있는 보수세력에 비해 야권 및 민주진보세력의 대안능력 부재로 대중에게 인식되면서 정치는 바뀌지 않는다는 대중적 패배의식의 자양분이 되어 왔다. 패배의식을 극복하고자 시도된 야권연대와 후보단일화는 크고 작은 선거때 마다 일정한 원칙없이 반복되면서 더 이상 신선함과 의외성도 주지 못하며 오히려 야권의 수권능력 부재라는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키고 있다. 대공황을 겪은 미국의 루즈벨트 민주당은 흑인 및 소수인종, 노동, 여성, 성 소수자 등 다양한 사회적 약자그룹들과의 연대 및 계약을 통해 이후 30여년에 걸친 강력한 개혁을 추진한 바 있다. 대중적 패배의식을 극복하고 변화가 가능하다는 전망을 주기 위해서 새로운 공동체의 가치에 동의하는 정당, 단체 및 개인은 선거에 임박한 연대나 단일화 전술을 폐기하고 크고 작은 진영논리에서 탈피해 단일세력으로 뭉쳐야 한다. 이전에 야권내에서 논의된 적이 있는 ‘빅텐트론’이나 ‘시민연합정치 모델’을 재검토해 시급히 논의에 착수하고 이 과정을 통해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10개년 실천계획’을 수립해서 국민과의 계약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국민은 개조대상이 아니라 변화의 공동주체이며 현재 우리사회가 필요한 것은 권력유지를 위한 피상적 개조가 아니라 국가혁신을 위한 근본적이고도 장기간의 과제이기에 국민의 광범위한 지지와 동의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100여일에 걸쳐 곳곳에 걸려 있던 노란 리본들이 비바람에 떨어져 나가고 빛이 바래지는 요즘, 일부 보수세력은 경제회복을 핑계로 이제 그만 노란 리본을 걷고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전의 일상이 되어선 안된다. 기억하고 노력하고 변화시켜야 한다. 1년 뒤, 2년 뒤 다시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의 영령 앞에서 무기력하게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 할 수는 없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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