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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위원 칼럼

[부산 블로그-부블부블] 시국선언에 대한 단상 - 한성안 교수

관리자 | 2013.09.16 16:34 | 조회 2966

 


▲ 경희대 교수들이 지난 8월12일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학교 중앙도서관 앞에서 국정원 정치·선거 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한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뒤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요즘 한국 사회가 큰 혼란에 빠져 있다. 한국인 중 어떤 이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걱정하는 반면, 다른 이는 안보위기를 걱정한다.

보수가 안보를 걱정한다면, 진보는 민주주의를 걱정한다. 전자가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사건을, 후자는 국가정보원의 헌법질서 유린을 그 사례로 든다. 둘 다 중요한 사건이지만 오늘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유로 인해 후자에 관심을 기울이고 싶다.

최근 나는 국정원 댓글사건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경험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를 얻었다. 이 사건을 직접 주도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국회 청문회 때 보인 뻔뻔스러운 행동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지식인 시국선언 동참 메일 보내기
말미에 '답신 없으면 동의로 간주'
'쪽수' 늘여보자는 얄팍한 '
전략'
'절차 잘못됐다'는 이의 메일 받고
'전략' 포기하고 '원칙' 지키기로
동참자 30명에서 20명으로 줄어

많은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그것은 이미 촛불집회로 표현되었으며, 지식인들의 시국선언으로도 표출되고 있다. 적어도 시대를 고민하며, 민주주의에 대해 작은 인식이라도 가지고 있는 지식인이라면 이런 시국선언에 동참해야 된다고 믿고 있었다.

얼마 전 부산지역 진보적 교수모임으로부터 지식인 시국선언을 준비하는데, 영산대에서 교수님들을 모아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빨리 해 달란다.

이게 참 어려운 일이다. 먼저, 시간이 촉박하니 전체를 대상으로 공지하기가 어렵다. 또 교수란 매우 개인주의적이다. 그러니 이런 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두고자 한다.

지방 사립대에선 재단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사학재단이 대부분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가진 자들'에 속하기 때문에, 시국선언에 동참한다는 것은 바로 총장, 이사장의 생각에 대항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공개모집하기보다 알음알음으로 연락을 취한다. 할 수 없이, 한두 번 얘기를 나눠 본 적이 있거나, 잘 아는 교수들 40명 정도를 골라 단체메일로 시국선언 동참을 부탁하였다.

자! 나의 성찰을 자극한 사건은 여기서 시작된다. 유의하시기를 바란다. 뭔가? 바로 이글이다! "답신이 없으면 취지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겠습니다."

왜 이런 꼼수를 부렸을까? 첫째,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이었다. 마땅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건 누구나 안다. 둘째, 모두와 굉장히 친하지는 않기 때문에 "동참하겠습니다"라는 답신을 내게 보내기는 쉽지 않다. 크게 반대할 일이 아니라면, '묵인'하는 것이 더 편리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완전히 합당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친밀하지 않기 때문에 불참의사를 전달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엄청 친하지 않은 관계라면, "안면 받혀" 동참하기보다 불참의사를 과감하게 전달하기가 더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원칙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가장 원칙적인 방식은 이래야 할 것이다. 나처럼 "불참하실 분은 답신해 주십시오"가 아니라 "동참하는 분들은 답신해 주시기 바랍니다"! 음, 후자의 문구가 더 원칙에 부합할 것 같다,

왜 이런 꼼수를 부렸을까? 우선 쪽수를 늘려보자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 방식을 취하면 이유야 어쨌든 쪽수가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꼼수로 표현되었지만 경우에 따라 '전략'으로 이해될 수도 있겠다.

'전략적 행동'의 결과를 보자. 2~3명 정도는 취지에 반대했다. 7~8명 정도는 취지에 공감하지만 개인사정이나 학교보직 등으로 인해 참여할 수 없어 죄송하다는 답신을 받았다.

답신할 필요도 없었지만 20명 정도는 동참의사를 적극 표명하며 답을 주셨다. 10여 분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동의하거나 묵인해 주시는 거구나! 얼씨구나! 이 정도면 성공이다.

30여분의 명단을 주최측에 전달했다. 이틀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많은 분을 모았으니, 놀랍단다. 영산대 교수님들이 이 정도로 민주주의를 고민하는 분들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일이 틀어지기 시작하였다. "절차가 잘못됐으니 앞으로 진보도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메일로 이의를 제기하신 것이다. 평소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분이니, 그가 그런 정의로운 절차를 요구하는 건 맞다고 생각하였다. 나머지 분들 중에서도 그럴 것이라고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전략'을 포기하고 '원칙'을 선택하기로  했다.

결과는? 한 분만 동참의사를 추가로 표명해 주셨다. 그래서 30여 명이 20여 명으로 팍 줄어버렸다. 애초에 답신하지 않았던 10여분은 시국선언에 적극 동의도, 반대하지도 않았으며, 그냥 내 체면 세워준다고 묵인해 줬던 것 같다.

애초에 묵인해 주었던 이 분들께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내가 봐도 그분들은 나처럼 평소 사회와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별 진보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얼마나 감사했을 것인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이제 10여 명의 '부동층'을 잃었으니, 시국선언의 동력도 약화될 게 뻔하다. 그러나 꼼수로 얻었던 숫자니, 잘못된 것이다. 뼈아픈 일이지만 진보는 앞으로 성찰해야 한다.

그런데 참 이해 안 되는 일도 일어났다. 평소 매우 진보적인 분들이 아무런 답신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학교와의 관계 때문인지, 내게 답신하는 게 쪽 팔려선지, 이번 취지엔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알 수 없는 게 인간이다. 아마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개인적인 일이 있었을 것이다. 누가 인간의 합리성은 완전하다고 했던가?

이번 일을 통해 두 가지 질문을 다시 떠올렸다. 첫째, '전략' 없는 원칙만으로 인간은 진보할 수 있는가? 둘째, 인간의 합리성은 완전한가? 글을 마치면서 내게 묻는다. '지식인은 왜 공부하는가? 지식인은 무엇으로 실천해야 하는가?'


 

한성안(한교수)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의 경제학

한성안 교수의 경제학 광장

http://blog.naver.com/saintco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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