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위원회
정책위원 칼럼

[국제신문-시론]남북대화도 安保(안보)다 /문종대
상호 신뢰와 평화는 주어지는 것 아니라 끊임없는 소통으로 만들어가는 것
잃어버린 5년이었다. 남북관계가 그랬다. 이명박 정부는 남북소통의 길을 막았고 박근혜정부는 그 길을 다시 열기 시작했다. 대화 단절의 끝자락에서 다시 새로운 길을 모색한 박근혜정부의 의미 있는 변화에 박수를 보낸다. 남북대화를 막는 것은 두려움이다. 대화는 형식상 동등한 위치를 요구한다. 북한을 흡수하거나 쳐부수어야할 대상으로 보는 사람들은 남북 간의 신뢰 형성과 공존 공영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남북대화는 줄곧 진보주의자들의 주장이기도 했다. 진보주의를 종북주의자로 몰아온 그들의 입장에서 남북대화는 진보주의 진영의 활동 공간을 넓혀 주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두려움에서 벗어나려면 정확한 현실인식에 바탕한 용기와 자신감이 필요하다. 북한 붕괴론이라는 무지가 자신감을 불러 일으켰다. 과도한 자신감 착각은 남북관계를 최악의 상태로 만들어 한반도 평화를 위기로 몰고 갔다. 그들의 무지한 몰역사적 인식은 정확한 현실인식을 방해했고, 평화를 두려워 했다. 오직 적대적 관계의 재생산을 통해서 통치를 하고자 했다. 이명박 정부는 평화를 선택할 용기가 없었고 또한 무지했다.
남북 평화는 증오와 갈등의 적이다. 북한을 악마화하면 할수록, 북한을 증오하는 것이 더 정의롭다. 그들의 정의는 오직 북한의 악마화가 전제될 때만 그 빛을 발한다. 그리고 그들과 생각이 다른 집단을 친북세력으로 몰아감으로써 자신들의 논리와 행동을 정당화시킨다. 여기엔 논리보다 악당에 대한 투쟁심과 악당을 물리쳐야 한다는 오직 단 하나의 목적만 존재한다. 악당과의 대화는 있을 수 없으며, 오직 그들을 쳐부수거나 절멸 시켰었을 때만 평화가 존재한다.
이명박 정부가 그랬다. 북한은 악의 축이었다. 대화의 상대가 아니었다. 오직 쳐부수거나 굴복시켜야 할 대상이었다. 극단적인 정면대결로 몰아감으로써 북한을 혐오하고 증오하도록 했다. 그래서 국민들의 마음은 북한에 대한 증오와 혐오로 황폐화되어 갔다. 황폐화된 국민정서는 내부의 적도 찾아 나섰다.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것은 틀린 것이 되었고, 틀린 생각은 바로 잡아야 한다는 정의감이 소통을 단절시켰다. 생각이 다른 사람은 소통이나 대화의 대상이 아니라 오직 설득의 대상이었다. 다른 생각을 틀린 것으로 인식하는 한 설득은 성공할 수 없다. 그것은 일방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설득의 끝은 언제나 갈등과 증오심으로 끝났고 사회는 갈등을 양산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신뢰는 서로 대화하고 호혜적으로 교류 협력하는 과정을 통해서 축적될 수 있다"고 했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을 일상적인 생활에서 치유하는 것이다. 김관진 국방장관의 개성공단 '인질구출작전', 보수 언론의 '돈줄' '밥줄' 같은, 상대를 적대시하거나 무시하는 언어와 태도들은 문화적 폭력이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우리 사회의 저속함이다.
평화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끝은 없다. 평화는 언제나 깨어질 수 있기에 소중하고 평화에 대한 열정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서로 평화롭기 위해서 상호가 줄 수 있는 것 이상을 요구해서는 안된다. 줄 수 없는 것 이상으로 요구하는 것은 협상이나 평화를 깨기 위한 것이다. 평화는 공짜가 아니라는 것,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 충분히 비용을 지불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은 대륙과 단절된 하나의 섬이다. 대륙과 해양이 접목될 때 한국은 세계경제의 중심으로 도약할 수 있다. 그 시발점은 남북대화이고 교류다. 박근혜정부의 성패는 남북관계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북대화가 곧 경제정책이자 국민행복시대를 여는 정책이다. 평화가 곧 경제다. 안보가 불안한 사회에서, 전쟁의 공포가 있는 곳에서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평화가 국민행복 시대의 초석이다.
미국과 중국의 데탕트 시대를 열고, 소련의 냉전을 종식시킨 것은 미국의 보수 정권이다. 박근혜정부야말로 전향적인 대북정책과 안보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 안보는 국방력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남북대화를 통한 신뢰 구축과 평화도 안보다. 박근혜정부가 한반도 평화통일의 새로운 역사를 쓰길 기대해 본다.
동의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번호 | 제목 | 글쓴이 | 조회 | 날짜 |
---|---|---|---|---|
15 |
[시론] 왜곡된 한국 전기시장 - 문종대 교수
![]() ![]() |
관리자 | 4655 | 2013.12.05 17:09 |
14 |
[한겨레신문]비상식적 수도권 전기료-한성안 교수
![]() ![]() |
관리자 | 4901 | 2013.11.19 10:09 |
13 |
[기고] 기초연금, 어디로 가야 하나 - 유동철 교수
![]() ![]() |
관리자 | 5019 | 2013.10.29 17:17 |
12 |
[正論]겁박과 상징조작의 정치- 한성안 영산대 교수
![]() ![]() |
관리자 | 4887 | 2013.10.15 11:12 |
11 |
[시론] 길을 걷는 공원, 동해남부선 /문종대
![]() ![]() |
관리자 | 5080 | 2013.10.15 11:10 |
10 |
[부산 블로그-부블부블] 시국선언에 대한 단상 - 한성안 교수
![]() ![]() |
관리자 | 5584 | 2013.09.16 16:34 |
>> |
[국제신문-시론]남북대화도 安保(안보)다 /문종대
![]() ![]() |
관리자 | 4991 | 2013.08.29 15:33 |
8 |
[정희준의 '어퍼컷'] 막장 행정의 끝, 부산 오페라하우스/ '막행정'
![]() ![]() |
관리자 | 5788 | 2013.08.23 14:01 |
7 |
[국제신문] 동천 재생 4.0 부산의 미래를 흐르게 하자 <4-14> 동
![]() ![]() |
관리자 | 6893 | 2013.08.23 11:38 |
6 |
[부일시론] 지방대학을 살리는 길 / 김태만 한국해양대 교수 동아시아학
![]() ![]() |
관리자 | 5507 | 2013.08.23 11:20 |
5 |
[부일시론] 극지연구소는 왜 부산에 와야 하나/ /김태만 한국해양대 교수
![]() ![]() |
관리자 | 5038 | 2013.08.23 11:17 |
4 |
[부일시론] 글은 도끼다 /김태만 한국해양대 교수 동아시아학
![]() ![]() |
관리자 | 5508 | 2013.08.23 11:15 |
3 |
[국제 시론]체르노빌, 후쿠시마, 부산? /문종대
![]() ![]() |
관리자 | 4884 | 2013.07.17 17:57 |
2 |
[부일시론] 극지연구소는 왜 부산에 와야 하나
![]() ![]() |
관리자 | 5013 | 2013.07.16 14:44 |
1 | 한겨레신문 '한성안의 경제산책' 혁신 없는 '규모 만능주의'-6월 2일자 | 류광태 | 5509 | 2013.06.13 11:07 |
